다큐공감 (1TV, 5월19일) 물러나…산문에 들다

KBS 1TV <다큐공감>

 

■ 방송일시 : 5월 19일 (토) 저녁 7시 10분 KBS 1TV

 

물러나… 산문에 들다

    

어느 봄날, 은퇴자 열여섯 명이 산문에 들었습니다.

일주문에 나이도, 사회적 지위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름하여 “은퇴 후 마음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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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인생 4단계 중 세 번째는 ‘임서기’로 숲에서 사는 시기를 말합니다. 50세에서 75세까지 가족을 떠나 숲에서 살면서 자신의 내면을 추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 경북 봉화의 천년고찰 문수산 축서사에도 한국적 임서기를 자처하며 속세의 일상을 접고 열여섯 명이 찾아들었습니다. 녹록치 않는 세월을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지만 돌아보니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세월, 누군가는 사회적 출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사업 실패와 가정 불화 등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좌절도 겪었습니다.

또 누군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해 보겠다 마음먹었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포기를 거듭하기도 했습니다. 이곳 축서사에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남은 생애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은퇴 후 마음 출가’를 감행한 이들의 7일간의 특별한 여정을 담았습니다. 

 

산사로 들어오기 열흘 전,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춘호 전 기자가 들려주는

나와 열여섯 행자들의 솔직담백한 수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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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이 되다  

법조인으로 40년 넘게 살았지만 줄곧 원하는 삶이 부처님 공부하는 것이라는 변호사, 평사원으로 시작해 성공을 위해 달리느라 스트레스 관련 모든 질병을 앓고 있는 전 외국계 회사 CEO, 젊은 시절부터 출가를 소원했지만 자식, 남편, 아버지의 도리에 발목이 잡혀버린 전직 교사 등 전국에서 모여든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이들이 축서사에 들어와 처음 한 것은 휴대폰을 반납하고 세상과 단절하는 일이었습니다.  ‘무無’자 돌림의 법명을 받고 ‘오직 행할 뿐’이라는 행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지도를 맡은 선업스님의 주문은 “일곱 살로 돌아가라”였습니다. 다름 아닌 세속의 물을 빼고 어릴 적 동심을 찾으라는 화두였습니다. 초심자는 물론 40년 절집 베터랑까지 지금까지의 알음알이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모두 내려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텅빈 마음에 자연의 법문이 오롯이 가슴으로 들어왔습니다.

    

  낙숫물 떨어지는 흙바닥에서/동그랗게 동그랗게 물방울이 구르고

  앉은 자리가 극락이니 그 소리는/천지간에 音樂이 되어 구른다

                    – 박봉련/무안 행자

 

나를 만나는 것이 곧 부처를 만나는 일이다

열여섯 명의 행자들은 만다라 그리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에 있는 해묵은 감정들을 그대도 쏟아냈습니다. 행자들은 이제껏 남편 탓, 아내 탓, 남의 탓만 하던 자신의 민낯을 만났습니다. 지금껏 바위 같이 무거운 짐을 혼자만 지고 있다는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가족의 아픔은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최고령 행자도 저만치 숨죽이며 울고 있습니다. 

기와 위에 욕심껏 꾸민 마음의 정원을 곧바로 되돌려 놓으라는 선업 스님의 말씀에 당황한 행자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삶에 집착하고 욕망을 갈구했던 자신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나, 첫마음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회이고 용서이며 또 남은 생애를 위한 마음의 깃발을 바로 세우기 위한 발원이기도 했습니다.

    

돌이 지극 하면 탑이 되고 탑이 지극 하면은 꽃이 되는 그런 마음,

제 일상이 돌이라면 제 일생은 꽃이 아니겠습니까? 

일상에서 끝을 보려 하는 게 아니라 살고 나니 결국 일생이 꽃처럼

아름다운 한편의 드라마가 되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에요 

– 이춘호/무주 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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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도 놀이처럼

이제 열여섯 명의 행자들에게 수행은 놀이처럼 유쾌한 일상입니다. 느티나무 아래서 펼쳐진 작은 연주회는 마음공부를 향한 행자들의 치열한 열정에 쉼표가 됐습니다. 행자들은 7일간의 마음출가에서 찾은 그 첫 마음을 연등에 실어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은퇴 후에는 남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겠다 소원한 행자들도 부처님께 재능 공양 -무촉 행자의 승무, 무성 행자의 바이올린 연주, 무안 행자의 냉이꽃, 무설 행자의 머위쌈에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닮고 싶다는 값진 마음을 담아 올렸습니다. 

이춘호 무주 행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세 번째 제문으로 “생사일근(生死一根, 삶과 죽음이 하나의 뿌리)”글씨와 동요 ‘구름’을 불렀습니다. 마음출가를 하고 나니 모든 것이 나의 문제였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변하니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축서사 산문을 나서는 행자들에게 무여 스님은 죽비처럼 다시 화두를 내렸습니다.

 

흔히 이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 읽는, 책에서 배운, 책에서 얻는 

지혜는 반딧불에 비유해요. 그러나 수행을 해서 얻는 지혜는

태양에 비유합니다. 이 태양과 반딧불이 비교가 되겠어요.

-무여 스님/문수산 축사서 주지

 

사진제공 : KBS 1TV<다큐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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